top of page
목회서신
[목회서신] 성숙한 감사는 역설적인 감사입니다. | Mature Thanksgiving Is Paradoxical Thanksgiving.
성숙한 감사는 역설적입니다. ‘역설(逆說, paradox)’이란 말은 겉으로는 모순되어 보이지만, 그 안에 더 깊은 진리가 숨겨져 있는 말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종종 깊은 진리를 역설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 12:25).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이 말씀들은 모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잃음 속에 얻음이, 낮아짐 속에 높아짐이, 죽음 속에 생명이 피어나는 영적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역설적 감사는 좋은 일이 있을 때 드리는 감사가 아니라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하지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불평하거나 원망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상황을 초월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강준민 목사 Joshua Choon-Min Kang
55 minutes ago
[목회서신] 거듭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은혜 | The Grace That Lets Us Begin Again
새생명비전교회가 창립 16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8년 동안 성심을 다해 섬기던 교회를 떠날 때 제 손은 빈손이었습니다. 이민 목회의 쓴맛을 경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실패의 골짜기, 눈물의 골짜기로 떨어졌습니다. 그 골짜기는 생각보다 깊었고, 충격도 컸습니다. 그러나 그 깊은 골짜기에서 저는 은혜의 샘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시 84:6). “여호와께서 샘을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시 104:10). 하나님의 은혜와 저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의 도움으로, 그 깊은 골짜기에서 새생명비전교회가 태어났습니다. 그때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거듭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넘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패가 문제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
[목회서신] 열린 손으로 드리는 기도 | Prayer with Open Hands
헨리 나우웬은 《열린 손으로》 (With Open Hands)라는 책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기도할 때, 두손을 펴라. 열린 손으로 기도하라.” 그렇다면 ‘열린 손으로 드리는 기도’란 어떤 기도일까요? 첫째, 열린 손은 집착을 내려놓는 기도입니다. 두 손을 편다는 것은 움켜진 손을 푸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주먹을 쥔 손으로 기도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움켜쥔 손은 소유하려는 욕심, 지배하려는 의지, 숨기려는 두려움을 상징합니다. 두 손을 편다는 것은 집착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집착을 버리면 살아갈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그렇게 붙잡았던 것이 얼마나 덧없었는지를 깨닫습니다. 오히려 집착 때문에 더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둘째, 열린 손은 침묵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기도는 구함이지만 동시에
[목회서신] 무명의 소녀에게 배우는 아름다운 지혜 | Beautiful Wisdom from an Unknown Girl
아틀랜타 섬기는교회에서 나아만 장군을 구원한 무명의 소녀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 어린 소녀는 전쟁 중, 아람 땅에 사로잡혀 온 포로였습니다. 전쟁은 언제나 이별을 낳습니다. 그녀는 부모와 친척, 친구를 떠나 낯선 땅 아람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조금만 상상해 보아도, 그녀가 겪었을 두려움과 외로움, 좌절과 낙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녀의 낙담한 모습을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나아만 장군의 아내를 섬기는 종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아람 왕 앞에서 존귀한 사람이었고, 나라를 구한 큰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병 환자였습니다(삼하 5:1). 나아만이 존귀한 사람이었다면, 그의 아내 역시 존귀한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자신을 시중드는 여종으로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어린 소녀를 선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조금의 거룩한 상상력을 더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bottom of page


